요새 인생을 거대한 바둑판에 비 유한 만화를 읽고 있습니다. ‘이미 둔 수는 절대 무를 수 없다는 점’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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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여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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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늦었다고요? 늦은 것은 당신의 결 심뿐입니다” 저는 한때 5년차 대 기업 직원이었습니다. 저는 지금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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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상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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왼쪽
오른쪽
요새 인생을 거대한 바둑판에 비유한 만화를 읽고 있습니다. ‘이미 둔 수는 절대 무를 수 없다는 점’에서 바둑이 인생과 닮았다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.
지금 생각하면 한 수 무르고 싶은 제 1년 전 모습… PD가 되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벌인 제 만행(?)을 합격 수기로 작성하고자 하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. 대국자 입장에서는 창피하지만, 그래도 제가 수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 기보(棋譜) 한 자락을 들춰보고자 합니다.
작년에 출제됐던 PD직군 문제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. <회사, 물건, 가게, 소프트 웨어 등 제품에 상관 없이 어떤 것을 자유롭게 팔아보아라>, 그리고 A3사이즈의 큰 백지를 몇 장 나누어 주셨죠.
문제는 분명 창의력을 묻고자 하는 문제였을 겁니다. 저와 함께 합격한 동기들의 수기를 들어보아도 역시 그랬습니다. 그런데 전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쓰고 왔습니다. 물론 심사위원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. 내가 왜 PD가 되고 싶은지,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문제라고 해석하고 싶었습니다. 그래서 저는 그 백지에 ‘저’를 그리고 나왔습니다. 집 앞 초등학교에 걸린 시 한 구절,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상실의 시대, 대판 싸웠던 친구의 얼굴…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잡다하게 섞인 말도 안 되는 편지 한 장을 꾸역꾸역 써 내려갔습니다. (물론 그 글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감정덩어리였음은 분명합니다.) 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편지라는 생각으로 썼습니다. 비록 글 솜씨는 없을지언정 ‘메시지’는 통할 거라는 제 순진한 생각이 적중하길 바라며 간절히 썼습니다.
이어진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. . 그때 전 제 인생을 전부 걸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. 몇 십 년을 방송계에 몸담아오신 국장님, 선배님들 앞에서 제 말은 어쩌면 우스운 새내기의 허풍으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. 잘못된 수일지도 모릅니다. 열정만 갖고 덤볐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. 그럼에도 생각했습니다. 지금 보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.
검은 돌, 흰 돌의 한 수 한 수 어떻게 얽혀 들진 초수만 보면 알 길이 없습니다. 때론 상대편이 장악해버린 분위기에 휩쓸려 에라이!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한 수를 놓기도 합니다. 나중에 뒤돌아보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 법이죠.
그렇지만 저는 조금 돌아가더라도, 그 잘못 놓은 한 수가 언젠간 징검다리가 되어 제대로 된 집 하나 짓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. 실패라고 생각했던 모든 발자취가 모여 제법 그럴 듯 한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.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의 접착제는 ‘열정’과 ‘자신감’이라 생각합니다. 제가 가진 건 저 두 가지 무기밖에 없었습니다. 능력이 있어도 보여주지 못하면 끝이라는 마음가짐으로/ 나한텐 뭐가 없어도 언젠간 뭐가 생길 거라는 근.자.감으로/ 도전하세요.
그리고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.
감사합니다.
눈뜨고 버틴지24시간 째. 편집실의 공기는 매캐합니다. 밥은 먹는 둥 마는 둥, 편집기 모니터와의 오랜 눈싸움 끝에 얻어낸 것은 모니터 속 소녀시대와의 대화법입니다. 입사 전에 본 PD들의 머리는 모두 장발이었습니다. ‘아, 역시 창작 하는 사람들은 다르구나’ 했던 그 동경의 머리가, 이제와 보니 그냥 안 깎아서 자란 머리였습니다.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.
그러나 입사 전과 후에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. 바로 일의 ‘즐거움’입니다.
일(work)이 일(labor)이 아닙니다.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이, 도무지 노동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. 즐거웠기 때문에 밥 때도 놓쳤고, 잠자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. 모니터만 바라본 채 말이죠(머리는 그냥 안 깎아서 자란 게 맞습니다). 저와 동기들, 그리고 선배들 모두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.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정신 상태로 무장한 채 하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.
조각상에 사랑을 품고, 끝내 사람이 된 조각상과 사랑 할 수 있었던 한 석공(石工)의 이야기. ‘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’는 피그말리온을 아십니까? 어쩐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요? JTBC의 비전은 ‘아시아 대표 방송’입니다. 갓 돌이 지난 회사의 비전치고는 거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. 그러나 우리는 오직 열정과 즐거움을 가지고 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합니다.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죠.
당신도 피그말리온 입니까?
시험지를 받는 순간,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.
'작문'이라고해서기존과 똑같은 글쓰기만을 준비했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머리를 세게 맞은
느낌이었다. 상품을 디자인하고 또 그것을 설명하는 광고를 만들라니! 난 누군가또 여긴어딘가.
총 5차까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작한 회사 생활역시 놀람의연속이었다.
새 것냄새 가득한 회사 건물안에서 나와 동기들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했다.
동기 중에는 편성운행, 교양, 예능, 스포츠(?)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아우른 사람까지 생겼으니,
이 회사 참 다이나믹하다.
연예특종 프로그램하면서직접 리포터로 얼굴까지 내보낸 친구들, 그리고 입사한지
얼마안되어 건방지게(?)더빙하면서 큐사인 주는 나까지.
JTBC의 신입 피디들은 정말 다이나믹한 한 해를 보냈다.
우리가 만일 다른 회사에 갔으면 이런일을 할 수 있었을까?
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JTBC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.
(단, 들어올땐 마음대로지만 나갈때는 아니란다.ㅎㅎ)
“늦었다고요? 늦은 것은 당신의 결심뿐입니다”
저는 한때 5년차 대기업 직원이었습니다.
저는 지금 2년차 막내 조연출입니다.
서른 한 살의 여름은 유난히 치열했습니다. 서너살 어린 친구들과의 경쟁이 결코 쉽지는 않았죠. 3번의 면접 때마다 들었던 질문은 ‘왜 편한 길을 마다하고 힘든 길로 오려 하느냐’, ‘어린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겠냐’, ‘부모님은 너의 무모한 결정을 알고 계시냐’ 등등 다양했습니다. 심지어 ‘결혼했느냐’라는 질문까지... 서류전형, 필기시험과 3번의 면접까지 거치고 나서야 제 핸드폰에 ‘최종합격하셨습니다’라는 문자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.
결국 저는 서른한 살의 늙은(?) 신입 PD가 되었고, 그 나이덕에 통합공채 1기 기장이 되었습니다.
왜 PD가 되고 싶었냐구요? 이유는 간단합니다.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단 한번도 PD를 써보지 않았던 적이 없었거든요.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치고 ‘아.. 난 결국 이렇게 훌륭한(?) 회사원으로 늙어가는구나’라고 느끼며 살아가던 어느 날. JTBC가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와 식어있던 제 심장에 불을 댕기고 말았습니다.
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인연입니다. 전 직장의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중앙일보 빌딩의 J자가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. 저는 1차 면접에서 이선희의 ‘J에게’를 불렀고, 이후 모 행사장에서 공채 1기 동기들과 함께 다시 한 번 ‘J에게’를 불렀습니다. ‘J. 난 너를 못 잊어’라는 그 가사처럼 PD에 대한 저의 바람은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나 봅니다.
지난 1년의 시간. 한 사람의 시청자에서 한 사람의 PD로 거듭나기(아직 많이 부족하지만)까지의 하루하루는 정말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. TV에서만 봐오던 연예인들. 기사로만 접하던 유명한 선배 PD들. 화려한 조명과 무대. 그리고 녹화 직전의 그 치열한 긴장감까지... 이 글을 읽고 지원 버튼을 누르는 당신은 세 가지 이유에서 그 누구보다 행운아입니다. 첫째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인 PD를 자신의 평생 꿈으로 삼았기 때문이고, 둘째로 늦은 나이에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PD가 된 제 후기를 보고 힘을 얻기 때문이고, 마지막으로 당신이 들어오고자 하는 이곳이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갈 젊은 JTBC이기 때문입니다.
PD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카타르시스는 내 머리 속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. 매주 혹은 매일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보며 울고 웃을 때, 인간의 ‘말’로는 완벽하게 포장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 세상 그 무엇으로도 느끼기 어려운 그 성취감. 이 짜릿한 하루하루를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.